memory76 매킨토시 파워북 145B, 그리고 '돌로레스 클레이븐(Dolores Claiborne)' 기자생활을 하면서 노트북을 처음 쓴 게 1992년 말부터이다. 그때 애플OS에 관해 1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매킨토시 파워북 145B를 썼다. 비쌌다. 전자신문 다니는 후배 덕으로 30% 디스카운트한 게 그 당시 거의 200만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값을 톡톡히 하는 노트북이었다. 성능이 MS 노트북보다 월등하게 좋았다. 이를테면 해외에서의 기사송고를 전화모뎀에 의존하고있을 때인데, 이런저런 에러가 빈발했지만, 내 노트북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전화사정이 안 좋은 타시켄트에서 내 노트북으로 다른 기자들 기사 송고까지 해 줬을 정도였으니. 그걸 1997년까지 쓰고 그 후 회사에서 지급된 대우 노트북에 이어 지금은 삼성 걸 사용하고 있지만, 맥 파워북 노트북에 대한 애정은 지금도 남아있다... 2022. 11. 15. 光化門 추억의 그 곳, 그리고 李舜臣장군 동상 광화문 인사동 가는 길 쪽 옛 미대사관저가 헐리고 그 자리에 '송현공원'이 들어서는 등 이 지역이 많이 변했다. 궁금했던 건 그럼 옛 미대사관저 그 아래, 그러니까 사간동 지역은 어떻게 변했을까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동십자각 건너 편 출판문화회관이나 오래 된 사진관인 '란스튜디오'는 그대로 남아있을까 하는 나름의 우려섞인 궁금증이기도 했다. 그 쪽이 나로서는 옛 청춘의 시절, 추억이 서린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저께 광화문 프레스센터 나간 김에 확인을 했더니, 그것들은 '다행이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1977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숙을 한 곳이 가회동이니, 이래저래 이 쪽 지역을 뻔질나게 오갔다. 그리고 1990년대 총리실과 청와대 출입을 하면서 또 많이 삐댄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2022. 11. 9. 초짜 기자시절의 한 ‘추억’ 1970년대 후반, 그러니까 초짜기자 시절의 얘기다. 아침에 오늘은 뭘 쓸까하는 기사꺼리로 골몰하면서 출근하다 버스 안에서 어떤 포스터를 봤다. 당시 통일원 주최로 남북이질화와 관련한 사진 및 자료전시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보면서 남북이질화만 저렇게 강조하면 어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순진하던 시절이라, 통일을 위해서는 이질화 조장보다는, 같은 한민족이라는 동질성으로 민족성을 회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로 출근해서도 머리 속은 그 포스터 생각으로, 저걸 어떤 형태로든 반박하는 기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쪽으로 대략적인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당시 정보당국에서 제공하던 비밀자료를 뒤지게 됐다. 귀순한 북한주민들의 증언을 모아놓은 말 그대로 생자.. 2022. 7. 19. 1984년 북한의 권력서열(power hierarchy of North Korea, 1984) 1984년 어느 달, 북한의 권력서열(power hierarchy) 표다. 당시 북한관련 영문저널인 를 만들고 있을 때 두 달에 한번 씩 발간하던 특집책자 부록에 수록된 것이다. 지금은 어떨런지 잘 모르겠으나, 1980년대는 북한의 이런 권력서열에 관심이 많이 집중돼 국내외 언론사와 관련연구기관 등에서 정기적으로 이를 유지 관리해오고 있었다. 당시는 김정일이 1980년 10월 로동당 6차대회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화된 이후 국내는 물론 서방에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활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일의 후계권력관련 동향은 당 중앙위나 정치국회의 등에서의 그의 공식적인 출현 여부에 의지하는 바가 컸었다. 그러니까 당시 이런 권력서열 표를 유지한 것은, 이를 통해 물론 북한의.. 2022. 7. 13. '밴티지 포인트(Vantage Point)'의 追憶 (얼마 전 옛 직장 후배가 전화를 해 왔다. 근 십여 년만이라 반갑기도 했지만, 갑작스러운 전화라 좀 놀랐다. 후배는 연변 과기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곽승지 박사다. 그 후배는 인터넷에 떠 다니는 나의 옛글을 우연히 접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한 것이라고 했다. 후배로부터 '밴티지 포인트(Vantage Point)'라는 말이 나왔다. 맞다. 내가 2016년에 블로그에 끄적여 놓은 글이다. 8년 간 매달려온 그 영문저널이 수명을 다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자취라도 남겨야 하겠다는 아쉬운 생각에 쓴 글인데, 그 글을 후배가 어디서 본 것이다. 후배는 내가 1990년 그 일을 그만두고 신문사로 가면서 통신사를 나왔을 때 내 후임으로 그 저널을 만들었고, 그 후 1999년 연합통신으로 일이 이관되면서도.. 2022. 7. 6. 1968년 M고등학교 2학년 ?반 70줄 나이 늙은이들이 꾸무적한 날, 할 일이 정말 없는가 보다. 196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몇 반이었는가를 두고 오늘 고교동기 카톡방에 불이 났다. 나는 6반이었다고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얘기들이 나온 것이다. 내가 주장했던 근거 아닌 근거는 키 순으로 한 반의 내 번호가 12번이라 2612, 그러니까 2X6=12라는 등식으로 그때부터 지금껏 기억해온 것이었는데, 동기들 얘기로는 틀렸다는 것이다. 동기들 얘기도 엇갈렸다. 4반이라고도 했고 7반이라고도 했다. 마산에 있는 동기들에게까지 전화로 물어보기도 했는데, 역시 엇갈렸다. 나로서는 내 기억에 관한 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경천동지할 노릇일 뿐더러 한편으로 그런 점에서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내 주장만 고수할 수 없는 처지.. 2022. 6. 26. 이전 1 2 3 4 5 6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