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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碧宵嶺)의 달 지리산 종주길에 비를 맞는 것은 흔한 일이다. 비가 오고 안 오고를 가늠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1,500미터가 넘는 산군을 품은 하늘의 기운을 인간의 잣대로 가늠질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저 비가 오면 맞고, 안 오면 안 맞고 오르내리며 걷는 길이 지리산이다. 비는 새벽부터 뿌려지고 있었고 천왕봉을 오른 후 장터목, 새석평전을 거쳐 벽소령으로 가는 지리산 산길은 비와 구름의 천지다. 벽소령은 지리산 능선 종주길의 중간 쯤에 위치한 탓에 하루를 묵어가기에 적합한 곳이다. 하동 화개면과 함양 마천면을 이어주는 이 고개의 이름이 '벽소(碧宵)'라는 게 참 낭만적이면서 지리산에 걸맞다. 푸른 밤이라는 뜻의 이 말은 달(月)이 함께 해야하고 그에서 연유한다. 겹겹이 쌓인 산위 하늘로 떠오른 달빛이 희다 못.. 2020. 6. 7.
옛 전우가 그리운 6. 6일 현충일, 그리고 김영준 대위 다시 6월 6일 현충일이다. 매년 돌아오는 현충일이면, 호국영령에 대한 추모의 염과 함께 되살아나는 추억이 있다. 젊은 날 군 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나는 1973년 육군 1사단에 배치돼 6개월 간의 개성 바로 앞 '송악OP' 근무 후 임진강을 건너 파주 광탄 1사단 사령부 통신보급대에서 근무했다. 주특기는 280, 그러니까 무선정비병이다. 하지만 나는 시설보급일을 맡아 참모부 통신보급대 행정서기병으로 근무했고 거기서 제대했다. 거의 반 세기에 가까운 먼 옛날이다. 잊어먹기 전에 한번 생각하고 기억해 놓자. 사단장으로는 김봉수 장군, 통신참모로는 이희달 중령, 보급관으로는 이정복 대위, 김영준 대위(한 분을 더 모셨는데,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선임하사로 박종진 중사, 통신보급대 대원으로는 내 사수였.. 2020. 6. 6.
追憶의 사진 한 장 어느 책 갈피에서 이 사진이 나왔다. 1993년 11월의 어느 날이다. 김영삼 대통령 첫 방미 때 수행해 김종환 워싱턴 특파원과 함께 백악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한. 미정상회담 후였을 것이다. 사진 뒤에 동아일보 김영만 선배가 찍어 준 것으로 적혀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워싱턴 시내 한인식당에서 소주를 마셨을 것이다. 소주를 공개적으로 팔 수가 없으니까 흰 종이로 감싼 주전자에 담아 몰래 마셨다. 그날 밤 취한 상태에서 호텔로 들어가 기사를 썼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아이구 싶었다. 노트북은 켜져있는 상태였는데, 기사를 송고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기사를 보내지 않았다면 덩연히 징계감이다. 급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노트북을 살펴보니 어라, 기사는 보낸 것으로.. 2020. 6. 3.
내 아버지의 노래 '울고싶은 마음' 아버지 생전에 흥흥거리며 즐겨 부르는 노래가 몇 있었다. 아버지, 어릴 적 조실부모하시고 자수성가를 위해 일찍 고향을 떠나서일까, 모다 고향을 그리는 노래였던 것 같다. 하나는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로 시작되는 '꿈에 본 내 고향'이라는 노래였고, 또 하나는 '흘러가는 구름과 떠도는...'으로 시작되는 어떤 노래였다. 옛날 마산 집에 미제 제니스 전축이 있었는데, 어쩌다 한번씩 거기다 양판을 걸어놓고 당신 혼자 흥얼거리시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내 귀에 익은 노래다. 앞의 '꿈에 본 내 고향' 노래는 익히 많이 알려진 노래다. 그러나 뒤의 노래는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다. 제목도 모르겠고, 누가 불렀는지도 모른다. 이즈음 나도 한번씩 나도 모르게 그 노래의 멜로디를 흥얼거릴.. 2020.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