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76 순대국 한 그릇 - 반세기 만에 만난 옛 군대선배 "순대국이나 한 그릇 얻어 먹겠습니다." 48년 만에 만난 옛 군대 선배가 통화 마무리에서 한 말이다. 거의 반세기 전 어느 날 우리들은 문산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양반은 연대인사과 호송병, 나는 전출병. 우리들은 그 날 아침 일찍 임진강을 건너 파주 광탄 사단사령부로 가고 있었다. 나를 그곳에 인계하기 위한 것이다. 문산 버스차부에서 그 양반이 나를 근처 순대국 집으로 데려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또한 인연이니 순대국 한 그릇으로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사령부에 인계한 뒤 헤어졌다. 그 양반과 무려 48년 만에 어제 통화가 이뤄진 것이다.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나로서는 그 양반 생각이 많이 났다. 이름이 독특했고, 어쨌든 나를 DMZ에서 임진강 건너 후방으로 데려온 사람이기.. 2021. 9. 5. 명륜동의 추억, 그리고 인연 예전 학교 다닐 적에 하숙집이 명륜동 성균관대 입구에 있었다. 하숙집 골목 들어가는 입구에 단아한 병원이 있었다. '이교웅 산부인과.' 한글학자인 一石 이희승(1896-1989) 선생의 아드님이 하는 병원으로, 동네에서는 친절하고 솜씨좋은 병원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내 방이 있던 하숙집 2층에서 내려다보면 그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초여름이면 발갛게 꽃을 피우던 사르비아가 피어있던 그 집 정원이 생각난다. 2014년 1월인가, 그 병원 원장님이 타계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 시절 그 동네 병원과 하숙집을 잠시 떠올려보기도 했다. 며칠 전 다시 명륜동 그 하숙집과 그 병원을 떠올리는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에 문화재위원장으로 선임된 고교동기 전영우 박사와 점심을 하러 동숭동 나간 길에서다. 점.. 2021. 8. 30. 'Melancholy Serenade' 모처럼 선배에게 전화. 가는 전화신호가 어째 이상하다 싶었다.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선배의 말. “나 지금 귀가 안 들려. 문자로 해, 문자로…” 선배는 혼자 서대문의 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몇달 전 통화에서는 귀가 멀쩡했던 양반이 저러는 게 당혹스럽다. 선배는 그 때 통화에서 클래식음악을 듣고 지낸다 했다. 웬 일로 클래식? 물었더니, 잘 모르겠고 아무튼 클래식이 좋아 클래식음악에 빠져 지낸다고 했다. 오늘 모처럼 전화를 드린 건, 오클랜드의 후배와 연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옛날 1980년대 초 통신사 시절, 선배가 나의 사수였고, 오클랜드 후배에게는 내가 사수였다. 선배는 나를 꼬드겨 영문보도 파트로 데려 와 앉혔다. 그리고는 그 얼마 후 헤럴드 경제부장으로 내뺐다. 그 댓가로 선배는.. 2021. 7. 28. 回想의 북한산 산행(sentimental mountaineering) 어쩌다 북한산성 쪽에서 대남문 쪽으로 오를 때 생각이 많아진다. 추억에 많이 잠긴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북한산도 이제부터는 추억의 산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 코스를 처음 올랐던 게 30여년 전, 한창 산에 빠져 살던 시절이다. 매주 빠지지 않고 이 코스로 올랐다. 대서문으로 해서 도달하는 삼거리에서 방향을 결정한다. 백운대로 갈 것인가, 대남문 쪽으로 오를 것인가. 컨디션이 좋으면 백운대였고, 게으름이 피어오려면 대남문 쪽이었다. 구파발 쪽에서 오르는 북한산은 코스가 다양하다. 백화사 쪽으로 오르는 의상능선, 효자골에 오르는 숨은 벽 등등. 이런 코스로도 많이 올랐지만, 아무래도 많이 올랐던 건 대남문 코스다. 대서문을 보면 옛 생각에 젖는다. 어제 산행에서 대서문을 지나며, 그.. 2021. 7. 18. 지리산에서 만난 '반달곰' 지리산의 야성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 올려지는 건 반달곰이다. 지리산을 누비던 야생 반달곰이 사라진지는 오래 전이다. 지리산의 야성이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야성을 망친 건 인간들인데, 이제 와서 다시 그 야성을 살리느니 어쩌니 하는 건 하나의 아이러니다. 어쨌건 반달곰은 이제 와서 지리산의 하나의 로망이 됐고, 우리 인간들은 반달곰을 그 지리산에 복원하느라 온갖 정성을 다 하고 있다. 그 정성이 통했든지, 이제는 지리산에서 심심찮게 반달곰이 목격되기도 한다. 물론 옛날의 그 야생 반달곰은 아니고 인간의 노력으로 복원시킨 일종의 세마이(semi)적인 것이다. 하지만 반달곰의 개체임에는 틀림없다. 이번 3박 4일간의 지리산 종주길에서도 우리들은 '입'으로 반달곰을 몰고 다녔다. 일행 중 몇몇은 2.. 2021. 7. 4. 10년 만의 신림 땅 '용소막 성당' 원주 신림의 용소막 성당. 2011년 와 봤으니까 10년 만의 발길이다. 오기가 쉽지 않았다. 중앙선 신림 역이 폐쇄된 탓이다. 고양에서 버스를 타고 원주터미널에 내려서도 두 번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할 수 있었다. 금대리, 치악재 등 원주에서 용소막 성당 가는 길, 풍광은 예전 그대로인데도, 예전에 가던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연륜과 나이 탓일 것이다. 1980년대 초, 여기를 자주 왔었다. 장모님의 몸이 안 좋았다. 장인 어른이 어디 요양할 데를 구하다가 찾은 곳이 신림 땅이다. 그곳의 한 농가를 세로 구입했다. 윗채와 아랫채가 있는 자그마한 시골 촌집이었다. 윗채를 쓰고 아랫채는 집을 관리할 젊은 부부가 살았다. 장인께서 신림을 요양처로 구한 것은 장모님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그 곳에 있.. 2021. 6. 27. 이전 1 ··· 3 4 5 6 7 8 9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