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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늘 '묵주의 9일기도' 56일 째. 기도를 바치는 정해진 룰에 따른 마지막 날이다. 내 생애 처음 해본 묵주 9일기도다. 5월 5일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도를 드리게 해 준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께 감사를 드렸다. 절절한 마음이었다. 오늘 새벽 길 기도 중에 유독 떠올려지는 장면과 말씀이 있다. 예수님이 수난을 앞두고 겟세마니에서 사람의 아들로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 42). 묵주 9일기도를 바치면서 바람이 왜 없었겠는가. 애시당초 기도의 시작이 그것이었지 않은가. 그러나 기도를 바치면서 마음은 무거워져 갔고, 나의 바람의 생각은 자꾸 엷어져 갔다. 간절한 바람.. 2020. 6. 29.
'소경 할머니의 햇볕(Sunshine in the Blind Woman's Room)' by 아나 앙케르(Anna K. Ancher), 1885 '소경 할머니 방의 햇볕(Sunshine in the Blind Woman's Room).' 덴마크 출신의 여류화가 아나 크리스티네 앙케르(Anna Kristine Ancher, 1859-1935)의 1885년 작품(Oil on Canvas). 햇빛이 따스하게 어둔 방을 비추고 있고, 그 방에 묵묵히 앉아있는 할머니를 그린 그림이다. 할머니는 앞을 볼 수 없는 소경이지만, 따뜻한 햇볕을 느끼고 있는 표정이다. 사실주의와 인상주의파로 분류되고 있는 앙케르는 빛을 잘 처리하는 화가로서의 명망이 높다. 말하자면 빛과 색을 시각적인 차원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결합했던 화가였다. 따라서 그녀의 그림들 중에는 이런 주제의 그림이 많은데, '소경 할머니 방의 햇볕'도 그들 중의 하나다. 아나 앙케르는 그녀의 남편인 미.. 2020. 6. 28.
馬山 앞 바다 마산에 2박3일 있는 동안, 바다를 볼 기회가 마땅찮았다. 마지막 날인 26일 새벽 일찍 잠을 깼다. 잠자리에서 뭘 할까고 궁리를 하다 바다 생각이 퍼뜩 났다. 마산이 바다를 낀 항구도시이고, 나 또한 그 바다를 보고 자랐는데, 이제는 마산하면 자연스레 바다가 연상되어지는 곳이 아닌 곳이라서 그랬을까. 마산 바다를 떠 올리면서 좀 겸연쩍은 생각이 들었다. 근자에 어떤 보도에 따르면, 마산 바다가 깨끗해져서 관광 유치가 어떻고 저떻고 한다고 했다. 그 생각이 나를 바다가 보이는 선창으로 향하게 했다. 마산 바다는 양면성이 있다. 멀리 바라다 보는 것과, 가까이서 보는 것 이 둘의 차이가 극명하다는 것이다. 저 바다건너 구실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맑은 하늘아래 푸른 바다는 생선 비늘처럼 미끈거리고 있었다. 그.. 2020. 6. 28.
'이런 弔詩' 24일 함안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선배님 형수가 잠들고 계신 백사 묘소에도 비가오고 있었다. 풀이 많이 자라고 주변이 많이 헝클스러웠다. 때맞춰 하는 풀베기를 한번 걸르니 풀이 그렇게 무성할 수 없구나. 형수님 묘지를 바라다보며 춘돈 선배가 한숨을 쉰다. 형수님의 평분도 풀에 가리워져 있는 것을 그 부분만 치우고 묘지석도 딱았다. 묘석에 새겨진 글도 잘 보이질 않는다. 같이 간 감 여사는 형수님의 친구다. 고등학교, 대학을 같이 다녔다. 감 여사와 함께 막걸리 한잔 씩을 따르고 형수님을 추모했다. 나로서는 1년 만이다. 음복 술을 마시고 비 속 풀밭에 앉아 묘소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짠해진다. 그동안 얼마나 혼자 쓸쓸했을까.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형수님 평분의 묘지석에는 한편의 시가 적혀있다... 2020. 6. 28.
6월 28일 오늘로 묵주기도 55일째. 이제 하루 남았다. 2박 3일 마산을 다녀오고, 어제 북한산 산행으로 몸이 피곤에 절었으나, 새벽 4시도 전에 눈을 떴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마리아기도회성당이 보이는 곳에서 55일 째 묵주기도를 시작하고 걸었다. 생태습지공원으로 걷고 있는데, 대장천 천변 어느 길에서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묵주기도를 잠시 멈추고 일출의 장관을 한참 서서 보았다. 그 순간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성모송 기도가 입에서 흘러 나온다. 친구 관형이 집 사람이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얘기를 어제 들었는데, 그 생각이 났고 그와 함께 관형이 아내를 위한 기도가 흘러 나오는 것이다. 관형이 말 소리를 알아 듣는지 못 듣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아내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한.. 2020. 6. 28.
6. 25, '마산방어전투,' 그리고 배대균 박사 피아간에 수백만 명의 인명피해를 낸 비극적인 6. 25 한국전쟁을 두고 올해도 말들이 많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이 전쟁을 '내전'이라는 식으로 애매하고 모호하게 규정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6. 25가 어째서 내전인가. 6. 25는 민족상잔이라는 뼈아픈 요소가 있지만, 2차세계대전 종료와 함께 시작된 미국과 소련간 냉전을 극명하게 드러내 치러진 대리전 양상의 '국제전'이었다. 6. 25를 시발로 소비에트 소련이 붕괴하는 1990년대 초까지 세계는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간 그야말로 일촉측발의 위기가 지배했던 국제 냉전의 시기였다. 그걸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국이면서 당사국인 대한민국의 특정세력이 민족 간 이념 갈등으로 포장해 내전 쪽으로만 몰고가려는데서도, 6. 25를 이른바 '잊혀진.. 2020. 6. 27.